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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고자인지 초식남인지, 혹은 도 닦는 스님이 될 팔자인지. 자아정체성이 아직도 헷갈리는 이십대 머저리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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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에 해당되는 글 1

  1. 2013.01.08 [읽기]지하로부터의 수기
2013. 1. 8. 15:52 읽고

책표지는 민음사에서 출판한 것으로 선택. 저작권 문제를 여전히 잘 모르겠으니 문제가 있다면 알려주시길 앙망하오며



주인공 이름?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추악함과 나약함을 안고 끙끙대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 대한 사랑(에로스 말구...사람에 대한 사랑)이 자라남을 인지하며, 그 사실에 괜히 화를 내는 멍청이가 화자니까. 그냥 나랑 비슷한 새끼. 라고 생각하면 떠올리기 편하겠네.

 

소심함. 나약함에 대한 인지와 그로 인해 가지는 강함, 인기, 웃음 등에 대한 갈망. 하지만 손에 쥘 노력조차 자신의 추악함을 핑계삼아 포기하고 마는, 얼간이.

 

앞의 주절거림은 쓰레기다. 창녀에게 심리적, 지위적 우월감을 가져 분수 넘치는 조언을 해주어 영웅이 된 듯한 기분을, 매일 같이 다른 강자(심지어 제 하인에게도 멸시받는 불쌍한 작자!)들에게 치여, 자꾸만 굽어지는 허리와 움츠리게 되는 어깨를 부여잡고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에게 그런 기분을 한순간이나마 느끼게 해준 리자라는 창녀가 나오는 시점부터가 진짜배기.

 

소심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난 소심하니까 안 그런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알 수가 없으므로.

소심한 이들이 으레 그렇듯 화자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만의 공상에 빠진다.

'이렇게 내가 자비와 관용이라는 사랑을 베풀었으니 응당 가엾고 더러운, 하지만 지성은 있어보이는 이 창녀는 내 앞에 무릎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발등에 입을 맞출테지' 같은 생각을 하며 쾌감을, 그리고 동시에 초조함을 느끼는 화자. '진짜 그렇게 하면 어떡하지?'

 

냉소주의, 염세주의는 나약함의 상징이라고 본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 나약함을 가진 이들 중에서도, 상처를 아물게 해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지려 할 만큼의 인내심도,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상처입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세상을 차갑게, 혹은 지겹게 바라본다. 타성이라는 질척거리고 깊은 늪속에 몸을 숨겨버린다. '그럴 줄 알았지, 나같이 고결한 존재가 살기에 세상은 너무도 우매하도다.' 이게 냉소와 염세의 실상이다. 사람들이 이런 놈들을 볼 때 인상을 절로 지푸리게 되는 것은,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늪의 악취를 맡았기 때문이다. 상상과 자기만족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돌이킬 수 없을 만치 썩었기에 근처에만 가도 맡을 수 있는 고-약한 악취.

리자에게서 작은 승리감을 느끼고 늪의 얕은 부분으로 나왔던 화자는,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함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을 리자에게 들키고 만다. 가엾은 사람.

지성, 자애로움을 가장했던, 그래서 우월함을 느끼던 화자는 추락하는 기분을 느꼇을 것이다. 또다시 상처입은 얼간이는 발악한다.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자신을 상처입힌 창녀에게, 그리고 순간의 승리감에 들떠 방심했던 어리석은 자신에게.

자신을 벌하는 의미로 지하로 들어갔을 테다. 늪보다 단단한, 그리고 더 깊은 방공호 속에 자신을 유폐시킨 채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냉소로 가장해 글로 적고, 홀로 승리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상이 눈앞에 있지 않으므로 항상 승리하는 덧없는 공격.

마지막에 글을 중단한다고 쓰여는 있지만, 이후에도 더 적혀 있다는 것을 보면 끝까지 그 승리의 덧없음을 느끼지 못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글을 마치고 지하에서 나간 화자는, 덧없음을 느끼고 지하에서 나간 것일까? 늪을 걷어내고 상처를 아물게 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는지, 혹은 새로이 입은 상처를 부여잡고 다시 지하로 돌아와 징징거리고 있을지는. 다음에 다시 이 책을 읽을 내 자신이 어떤 모습을 하고 돌아와 책을 잡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도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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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으앙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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