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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고자인지 초식남인지, 혹은 도 닦는 스님이 될 팔자인지. 자아정체성이 아직도 헷갈리는 이십대 머저리의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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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10 [읽기]개밥바라기별
2013. 1. 10. 19:39 읽고



내가 표지때문에 읽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작품인데, 황석영의 작품임을 알아도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내가 대학교 1학년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은 내가 정신적 고자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혹은 여자보기를 돌처럼 하게 될 스님과 같은 멘탈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기도 전의 이야기.

그저 남고에선 느끼지 못했던 처자들의, 내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향긋한 샴푸냄새와 청아한 웃음소리에 넋이 나가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다운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적에 있었던 일인데, 내 친구가 자기 여자친구의 생일선물을 사러가자며 나를 끌고 나왔을 때다.

우선은 돌아다녀보자며 길을 걷던 놈은 돈도 없는데 책 선물을 해줘볼까 하면서 서점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눈에 띈 책이 바로 『개밥바라기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그 놈은 그 자리에 서서 책을 몇 번이고 들춰보았더랬다. 내가 혼자 돌아다니면서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뽑아왔을 동안 계속 그 자리에 서있기에 이 걸 선물할 생각이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선물 살 돈으로 내가 읽어야겠다 그냥.'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각종 기념일에 무덤덤한 나는 서로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할 수 있는 게 연인이라니까...? 라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갔고, 당연히 며칠 후 내 친구는 여자친구와 무지막지하게 싸우고 이별의 위기를 겪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내 기억 한 구석에는『개밥바라기별』이라는 소설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고, 이 년쯤 지났을까? 어떤 계기로 인해 폭풍 독서를 다시 시작했을 때에 이 책을 도서관에서 보았다. 나는 니체의 빌어먹을 짜라투스트라를 이해하는 고상한 시민이 되겠다는 허세 가득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던 참이었기에, 표지만 보고 가벼운 내용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부담없이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고, 읽었고, 뭐 그렇고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옴니버스 식이 뭐냐? 유준의 성장소설이랬지만 고민하는, 그러면서 자라나는 나무들의 이야기.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라나는 나무들은 서로 얽히기도, 얽힌 가지를, 아니 덩쿨이 낫겟다. 어쨋든 그렇게 자라난다.

준이는, 그네들은 전쟁을 민주화를 체감하며 자라난 내 기억속 청년학도 그대로의 이미지로 시작했다가, 많은 고민과 여행과 사람과 생각을 거쳐 사연 많은, 눈빛이 깊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영역을 기억하고, 지켜내면서 타인의 영역 속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들은 깊은 눈을 가졌으니까. 그런 사람이 되어간다.

인호와 또 정수와 무전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세상 구경하고 다니던 때의 준이도 좋았지만(사실 정수의 그림. 뱃전에서 바다를 눈으로 가슴속에 담고 있는 인호와 준이를 그려내던 정수의 모양이 상상되서 좋은 것이었다.), 대위를 만나 대학생이라는 딱지를 떼고 그저 한 명의 어른으로 노가다를 하며 돌아다니던 준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왜나. 생각 해보면 큰 고민 없이 앉아있던 자리 마음껏 엉덩이 털고 일어나 세상의 또 다른 장면으로 향해 훌훌 갈 수 있는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지. 그때부터는 진짜 한량처럼, 외로워 보였으니까. 배따라기. '너 어떻게 여기 완?'

대위처럼 세상 돌아가는 일 꿰찬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우선 돌아다녀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드네.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산다. 오늘은, 오늘이니까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 힘겹지만, 항상 힘겹지만은 않으니까 살 수 있다. 언젠가 다가올 또 다른 오늘, 나는 웃고있을까.

'헤어지며 다음을 약속해도 다시 만났을 때는 각자가 이미 그때의 자기가 아니다. 이제 출발하고, 작별하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오늘을 산다. 서로의 오늘은 서로가 만나는 순간 얽혔다가 헤어지는 순간 풀린다. 그리고 얽혀있던 자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고, 얽혀 있을 때의 자기를 그 자국을 더듬으며 떠올려 보자면, 이미 지금의 나는 그때의 자기가 아니니까, 어렴풋이 짐작만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자국이 많은 덩쿨이 될 테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심지만큼은 계속해서 감싸고, 보고, 기르고 해야 될테다. 그래야 내가 나인채로 다른이들의 덩쿨에 얽히고 또 내킬때는 풀고 다른 숲으로 마음껏, 언제든 갈 수 있을 테니까.

그리워하는 그 모든 덩쿨 자국을 기억하면서.



개밥바라기별(황석영, 2008,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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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으앙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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